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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유니콘에 투자한 VC의 삽질 회고 — EP.1: 5개 만들고 배운 것: 순서가 전부 틀렸다

Moloco, Radish 등 유니콘 초기 투자자가 직접 서비스 5개를 만들고 배운 것. 만드는 것과 키우는 것은 완전히 다른 능력이었습니다.

📚 시리즈: 유니콘에 투자한 VC의 삽질 회고

  1. 5개 만들고 배운 것: 순서가 전부 틀렸다 ← 현재 글
  2. AI가 만드는 비용을 0으로 만들었을 때 남는 것
  3. 서비스별 실패 부검 - 숫자 공개
  4. 그래서 지금은 뭘 하고 있는가

Moloco, Radish 등 글로벌 유니콘의 초기 투자를 담당했습니다. 10년 넘게 100개가 넘는 스타트업을 심사하고 투자해왔습니다.

작년부터 직접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코딩을 모르지만, AI로 2-3일이면 서비스 하나를 만들어 배포할 수 있는 시대가 왔으니까요. 그렇게 몇 달 동안 5개를 만들었습니다. AI 비교 서비스, 아이를 위한 동화책 생성기, YC 콘텐츠 기반 AI 챗봇, 심리 분석 도구, 운세 서비스.

결과부터 말씀드리면, 의미 있는 트래픽을 만든 서비스가 없었습니다. 무료인데도요.


”만들 수 있다”와 “키울 수 있다”는 완전히 다른 능력이다

투자자로서 저는 항상 이렇게 말해왔습니다.

“좋은 제품을 만드세요.” “PMF를 먼저 찾으세요.” “무료로 시작해서 트랙션부터 확인하세요.”

직접 해보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이 조언들이 틀린 건 아닌데, 결정적으로 빠진 게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오게 만드는 것”은 제품의 영역이 아니었습니다.

AI 덕분에 만드는 비용은 거의 0에 가까워졌습니다. 2-3일이면 서비스를 만들어서 세상에 내놓을 수 있습니다. 저처럼 코딩을 모르는 사람도 빌더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하지만 만드는 비용이 0이 됐다는 것은, 만드는 것 자체로는 차별화가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Product Hunt에 올리면 초기 트래픽이 올 줄 알았습니다. 제가 투자했던 회사들이 그렇게 해서 유저를 잡았으니까요. 안 왔습니다. 무료로 풀면 일단 써볼 줄 알았습니다. ‘이 정도면 돈 받아도 되겠는데’ 싶은 퀄리티를 만들어놓고요. 안 썼습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아무도 저를 모르니까요. 제가 뭔가를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니까요.


투자자가 0→1 구간을 모르는 이유

VC로 있을 때는 이 문제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딜플로우는 네트워크를 통해 자연스럽게 왔고, 창업자들이 먼저 저를 찾아왔습니다. 돈이 필요하니까요. 제가 봤던 회사들은 아무리 초기라 해도, 최소한 ‘누군가는 쓰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0에서 1로 가는 구간을 저는 사실 제대로 겪어본 적이 없었던 겁니다.

손종원 셰프가 흑백요리사에서 한 말이 떠오릅니다.

“제가 일했던 3스타가, 저를 3스타로 만들진 않더라구요.”

세계 최정상 주방을 거친 셰프가 자기 레스토랑을 열었을 때, 처음 느낀 건 자신감이 아니라 자괴감이었다고 했습니다. 유니콘의 초기 투자를 담당한 VC가, 직접 서비스를 만들었을 때 느낀 것도 비슷했습니다.

좋은 투자를 했다는 것과 좋은 제품을 만든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근육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만든 서비스에는 아무도 찾아올 이유가 없었습니다. ‘전직 VC’라는 타이틀이 유저를 데려다주지는 않더군요.


순서가 틀렸다

저는 “아이디어 → 제품 → 사람” 의 순서로 갔습니다. 맞는 순서는 “사람 → 대화 → 제품” 이었습니다.

누구를 위한 건지, 그 사람들이 진짜 뭘 원하는지. 제품을 만들기 전에 먼저 확인했어야 했습니다.

솔직히, 이건 투자자로서 수백 번 했던 조언입니다. 그런데 정작 제가 빌더가 되니까 가장 먼저 잊어버렸습니다. 투자자의 조언이 빌더의 현실에서는 전부 순서가 뒤집혀 있었던 셈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방법을 바꿨습니다. 만들기 전에, 먼저 이야기하기로 했습니다. 이 글이 그 시작입니다.

10년간 투자만 하다가 직접 주방에 선 사람이, 뭘 만들고, 뭘 실패하고, 뭘 배우는지 가감 없이 기록해보려 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AI가 만드는 비용을 0으로 만들면서, 실행을 피해왔던 사람들이 왜 직접 빌더가 되기 시작했는지”에 대해 써보겠습니다.

같은 고민을 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편하게 이야기 나눠주세요.


다음 편: 유니콘에 투자한 VC의 삽질 회고 — EP.2: AI가 만드는 비용을 0으로 만들었을 때 남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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